창세기 2:22~~25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전에도 느껴왔던 사실이지만, 위기는 진짜 얼굴을 드러나게 한다. 코로나19의 상황에서 한국의 교회가 보여준 사회적 책임감과 현실감각은 (개인적으로)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이번에도 그랬다. 소규모 교회모임을 통해 바이러스가 번져갈 때에, 교회를 통해 터져나온 소리는 결코 교회답지 못했다. 지난 7일 <중앙일보>에 '예배 봐도, 안봐도 망한다… 코로나에 개척교회 생사기로'라는 기사가 나왔다. 소수의 인원으로 간신히 버티는 소위 '개척교회'의 경제적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아니, 아는 바가 아니라 지금도 내가 체험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기사의 이면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목사들의 입장은 무척 송구하다. 방역을 위해 당장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연보가 없어 교회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볼멘 소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교회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교인들의 안전을 다소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종교에서 돈에 대한 집착이 화두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런 종교인들의 태도에 분노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3:16~17) (23: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23:17)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신약의 교회는 각각의 교인들이 걸어다니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가르쳤다. 그 결과 기독교는 보이는 건물로서의 성전을 극복하고 보이지 않는 영성을 깊이 추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임대료를 내지 못해 쫓겨나는 것과 교인 한 사람을 위험하게 만드는 것 중에서 무엇이 더 목회에 치명적일까?
일본에 와서 몇 년을 높은 임대료에 시달렸다. 그야말로, 교인들이 모두 허리가 휘도록 연보를 드렸지만, 목사는 먹을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 예배의 장소를 유지하는 것이 교회를 지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때는 그랬다. 그러나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 2011년도 대지진 때에 교인들 대부분이 흩어지면서 임대료 감당이 당장 불가능해진 것이다. 더 이상 장소를 빌릴 수 없었던 그 시절에, 나의 결정은 내가 사는 집으로 교회를 옮겨온 것이다. 그리고 수 년 동안 그렇게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교인들이 주일 아침에 와서 저녁에 가기까지 찬양하고, 아이들은 뛰고, 사람들은 시끄러웠다. 결국 집 주변에서 불만이 표현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알아보고, 공공기관의 교실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다. 공공기관이라 1년의 몇 주는 주일에 휴관을 했다. 그리고 공적 행사가 있을 때에는 교실의 대여가 불허되었다. 그럴 때에는 다시 목사의 집으로 모이거나, 아예 야외일정을 잡아 야외예배를 드렸다. 이런 방식의 적응은, 한 가지 각오 때문에 가능했다. 그것은 교회를 연보가 아니라 교인들의 믿음으로 세우겠다는 각오였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기도했고 지금도 기도하는 바이지만, 만약에 이렇게 하여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그 때는 나도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겠다는 각오였다.
목사들은 부흥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종종 그 부흥은 개인적인 '성공'과 구분되지 못한다. 그러나 진정한 부흥은 목사가 실패하고, 교회가 망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진정한 믿음을 주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동경드림교회가 문을 닫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 동경드림교회를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과 만났던 소중한 추억이 살아있고, 그래서 평생 어디에 가서든 그 시절의 신앙생활을 잊지 못한다면, 나는 동경드림교회의 간판이 어느 건물에 붙어 있든지, 혹은 없든지 상관없이 그것이 우리 교회의 부흥이라고 생각한다.
교인들은 목사의 맘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알게 된다. 이것이 30여년 목회의 길에서 배운 교훈이다. 비록 목사의 마음을 다 헤아리는 교인들은 없더라도, 결국 목사의 설교와 결단은 교인들에게 그가 추구하는 신앙의 비전과 인격을 드러나게 만든다. 무서운 일이지만, 이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인격의 감화는 말이 아니라 세월에서 나온다. 목사가 교인들의 곁에서 인내하며 평생을 살아야만 하는 이유이다.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가? 아니면 더 귀한 것이 돈인가? 명예인가? 성공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리고 이 대답이야말로 나는 목회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한 사람을 위기에 빠뜨리는 것에 대하여 죄의식이 없는 사람은, 천하를 위험하게 하고도 가책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늘 한 사람의 가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서야 한다. 나는 그것이 교회이고, 목회라고 생각한다. 샬롬~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2: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4: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4: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4: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4: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4: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4: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4: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3: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3: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3: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2: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2: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2: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2: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2: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2: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2: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2: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2: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15: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15: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15: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15: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15: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15:31)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23:14)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23:15)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23: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23:17)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