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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5.31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2. 2020.05.17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3. 2020.04.26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4. 2014.08.23 가제는 게편인가? 2
  5. 2013.02.03 진실히 섬기라
  6. 2012.09.23 자기를 점검하라.

 

 

2020-05-31 주일예배

 

사도행전 2:37~41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2: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주보찬양 PDF : bit.ly/2Anl8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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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주일예배설교

 

출애굽기 3:1~5

(3: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3: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3: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3: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주보찬양 PDF : bit.ly/2ZaEk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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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6 설교

사무엘상 15:26~31

(15: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15: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15: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15: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15: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15:31)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주보찬양PDF :  https://bit.ly/3aD6sW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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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는 게편인가?



김동호 목사님이 일본요한교회의 김규동 목사의 회개를 언급했다.
금요철야에 무릎 꿇고 앉아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장문의 글을 낭독했다는 것이다.
대단히 격앙된 논조로 '회개'를 환영했다.
그런데 이런 '퍼포먼스'가 과연 회개일까? 아니면 사건을 무마하고 없던 일로 돌리기 위한 작업일까?

김동호 목사님 글에서도 언급했다. 
이 사건을 죽기살기로 방어해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요한 교회에서 나왔다고. 그리고 오히려 상대방을 공격할 힘도 목사에게 있었다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대단하다는건가? 다행이라는건가?)

요한교회의 일탈은 이미 동경에서는 오래 묵은 문제였다.
단순히 노방전도의 강제성 때문만이 아니다. 대학 유학을 위해 온 청년들을 '사역'이라는 울타리로 가두어서 학업을 포기하고 '사역자'로 남게 하는 것이 그 교회의 전략이었다. 
심지어 사역자로 지목된 사람은 결혼도 함부로 못한다. 목사가 인정해주는 사람과만 사귈 수 있다. 안 그럴 경우, 교회에서 사역을 내려놓고 왕따를 당한다. 일종의 근신처분이다.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 순장이 찾아와서 월급의 십일조를 강제하기도 한다. 
이런 강제성이 먹혀들었던 이유는, 외국이라는 환경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학생이 언어도 서툴고, 환경도 낯설다. 더구나 일본은 유학생의 아르바이트가 허용되는 얼마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부유한 유학생이 아니라 정말 가난한 유학생이 많다. 그런 아이들이 유학 초기의 긴장 상태 속에서 거의 반항도 못하고 붙잡혔던 곳이 요한교회였다.

과거로만 한정할 일은 아니다. 지금 요한교회는 여행사를 운영하여 교인들의 항공권을 거래하고, 일본어학교를 통해 유학비자를 해결해 주고, 기숙사를 만들어서 학생들을 단속하고 있다. 심지어 핸드폰 개통이나 한국의 070 전화 판매도 교회의 인프라를 통해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교인들의 숫자(규모)를 가지고 감당하는 일이다.

김동호 목사님이 코스타 강사로 어떤 교제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관계가 점잖은 것이었을 것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유학생 사회에서는, 이미 10년이 넘도록 요한교회의 횡포와 무성한 이탈의 소문으로 시끄러워 왔다.
심지어 한국에서 유학원이 유학생을 모집하여 동경으로 보낼 때는, "요한(요도바시)교회를 조심하라. 거기 걸리면 유학생활이 끝장난다."라는 경고를 했다고 할 정도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일본 코스타의 주최교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교회가 가지고 있는 규모와 동원하는 인력의 힘이었다. 건전한 신학이나, 교회의 신앙적인 색깔은 애초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애큐매니칼 관점으로 보았을 때에, 기독교가 미미한 일본에서 분리가 아니라 연합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 때문에 얼마간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요한교회를 끌어 안았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10년이 넘은 관계 속에서도 '문제'를 전혀 몰랐다니... 이건 놀라운 맹신이 아닌가! 
이제라도 무시했던 문제들에 대하여 반성해야 할 코스타의 목사가, 아직 아무 것도 내려놓지 않은, 아직도 무시무시한 힘과 권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다른 목사의 눈물 한 방울에 이토록 호응하는 것은 당혹스럽다.
그렇다면 그 여성 사역자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고, 심지어 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하며 흘렸던 눈물의 값은 어디 있나? 그 눈물을 너무 헐값으로 퉁치고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가...

요한교회의 문제는, 신학의 부재와 신앙의 탈이성, 그리고 교우들을 목사의 홍위병으로 훈련했다는 것, 목사가 과도한 권력을 독점하는 점, 교회의 비지니스 모델을 지속적으로 개발한 점... 등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가지지 못하고, 그 열매로 나타난 성추행 사건을 우발적인 일탈로 보려는 관점이 우려스럽다.
제대로 된 회개를 보여주기를 나 또한 바란다. 그리고 기도하겠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갈 길이 멀고, 드러난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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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히 섬기라

목회/설교 / 2013. 2. 3. 21:00


2013-02-03 주일오전예배설교

제목 : 진실히 섬기라

본문 : 삼상 12:22~25


(12:22)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12: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12:25)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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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3 목양칼럼

 

신앙과 삶을 구분하여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진정한 믿음은 살아가는 것과 일치한다. 믿음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의 전부이다.

살아가는 것과 믿는 것을 구분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위선’을 경험한다.

위선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악(惡)이다. 아무리 열렬한 종교행위를 하더라도 위선을 품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다.

한 청년이 잠시 컴퓨터를 내게 맡겼다. 컴퓨터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몇 가지 업데이트를 하기 위해서였다. 가난한 목사가 뭔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그런데 작업을 하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낯선 이름의 폴더에 포르노가 잔뜩 들어 있었다.

서른이 훌쩍 넘은 청년이었다. 사적인 영역이기에 모른 척 하고 넘어갈까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 청년은 중요한 고민을 앞에 두고 하나님 앞에 작정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매일 시간을 정하여 기도를 하고, 그 사실을 목사인 내게 알려서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중이었다.

갈등이 일어났다. 민망한 이 사실을 그냥 지나갈 것인지, 아니면 목사로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 충고할 것인지 며칠을 고민했다.

그리고는 청년을 교회로 불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했다. 얼굴이 붉어졌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다음에 우리는 ‘응답 받는 기도’에 대하여 더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청년은 자기를 인정하고 기도생활을 위해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로 결심했다.

사람은 잘못을 한다. 그것이 실수이든, 고의이든 잘못을 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완벽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그런 잘못으로부터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의미한다. 삶을 리셋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잘못을 품고서 하나님과 대화하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더 열렬한 종교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설득하거나 강제하려는 경향까지 나타난다. 그러면서 삶과 믿음이 분열된다.

포르노가 문제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더 추악한 문제들도 많다. 이 문제들에 대하여 당연히 양심이 찔려야 한다. 나는 목사로서 여기에 대하여 위로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사람들이 다 그렇다거나, 그 정도는 가볍다는 식의 위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위로를 계속하는 동안, 영혼은 파선하고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진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 동안 아파야 한다. 믿음이 동맥경화처럼 막혀서 지배하지 못하던 삶의 영역들에 믿음이 들어가 지배하려면 눈물은 필수이다. 찔리고 아프고 고민할수록 영혼은 힘을 얻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개선된다.

위기는 이런 역동적인 작용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신앙생활이다. 그것은 겉으로 평온해 보이지만, 실상은 죽은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삶을 살면서도 전혀 이질감 없이 종교행위를 할 수 있다면, 심지어 사람에게 보이려고 더 열렬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영혼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부디 이런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혹시 있다면 빨리 자기를 점검하라. 병이 깊어지면 약도 소용이 없는 때가 온다. 희망은 기회가 있을 때에 붙잡아야 자기의 것이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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