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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5.06 우리, 식구들끼리 잘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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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5 목양칼럼

 

다른 사람을 향하여 참아주는 것보다 가족을 향하여 인내하는 것이 더 힘이 듭니다. 그래서 의외로 밖에서는 친절하다는 평판을 들으면서도 정작 가족에게는 매정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은 모두 이중적인 사람일까요?
모두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친절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도는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 의도가 얼마나 행동으로 실천될 수 있느냐가 중요하겠지요. 
어떤 의미에서,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절을 보여주는 것은 쉬운 편입니다. 그리 오래 보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게 중요한 사람들도 아니니까요.
그러나 가족은 다릅니다. 가족은 간섭의 끝판왕들이죠. 나름 그럴 만한 자격과 권리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선을 넘는 행동들이 자행됩니다. 그런 사람들(가족)을 향하여 '친절'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가족을 대하는 방식이 곧 모든 사람을 대하는 방식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친절이든, 배려이든간에…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가족에게서 시작되고 가족에게서 완성됩니다. 그래서 어떤 가정의 분위기에서 살았고, 살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대인관계와 사람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본래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좋은 사람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을 통해 성장하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교양적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매너'의 기본과 뼈대는 모두 가정에서 만들어집니다. 특별히 식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납니다. 그래서 식구들에게 잘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 식구들에게서 유대감을 느끼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아무리 사회의 관계를 잘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내면적으로는 단절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건 그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그의 결핍이 원인입니다. '식구'는 호적에 함께 이름이 쓰인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 주고 받는 관계 속에서 일체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식구에게 참기 힘들고 식구라서 친절하기 어렵지만, 그러나 식구에게마저 친절하지 못하면 자기 자신의 행복을 쌓아갈 수 없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반드시 이것을 주의하여 가르쳐야 합니다. 
아빠니까 무례해도 괜찮고 엄마라서 무시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엄마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태도가 무르익어 아이들이 친구들과도 좋은 관계를 풍성하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방을 쓰는 자기 형제에게조차 배려하지 못하면, 앞으로 사회 생활 속에서 만나지는 수많은 무뢰한들을 어떻게 참고 극복하겠습니까? 참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폭발하지 않겠습니까?
가정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평온이 지켜지지 않습니다. 오묘한 긴장감과 균형이 갖추어질 때에 비로소 가정에서 잡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결국에는 '관계'라는 어려운 숙제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더하기를 못하면 곱하기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더하기도 익숙하지 못한 아이에게 구구단을 외우게 하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은 원하는 답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결국 아이는 수학의 재미를 잃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식구들과의 관계도 잘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해낸다는 것은 과장이요, 억지입니다. 어떻게 대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답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그 과정을 진실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결국 행복할 수 없습니다. 늘상 '인간관계'의 부담 속에서 살지만 정작 사람과 사람이 사귀고 연대하며 공감하여 누리는 풍성한 행복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절입니다. 가정마다 갇혀서 식구들끼리만 함께 지내면서 나름 스트레스도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이혼율이 늘었다고 하고, 더러는 가정내 폭력사건까지 생긴다고 듣고 있습니다. 아마 아이들도 스트레스가 많을 것입니다. 부부들도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고, 형제들간의 긴장감도 높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의 실상을 보고, 확인하고, 고쳐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 가족이 얼마나 건강한지, 어디가 약점이 있는지, 그리고 이 약점을 앞으로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한 가지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인생의 바탕은 '물질'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때문에 부부가 서로 잘 지내는 것, 형제가 우애 있는 것, 가족이 함께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해주는 것보다 더 훌륭한 유산은 없다고 확신합니다. 
이 어려운 시절이 그런 유산을 잘 갈무리 하는 기회로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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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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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3 목양칼럼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보다 더 복된 일은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평생을 통해 그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선언했던 것입니다. (수 24:15)

자녀에게 부와 명예를 물려주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나의 하나님이 자녀에게, 또한 자녀의 하나님이 손자에게 이어지게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신앙의 유산이야말로 신자에게 가장 복된 유산이며, 가장 큰 명예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가 경박하여 신앙을 만홀히 여기고 있습니다. 목사가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이제는 그것을 교단에서 금지하는 법을 만든다고 합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희한한 교회법입니다.

과연 목회자의 일이 고되고, 가난하고, 욕되어서 ‘십자가의 길’이라면 그것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 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누리고 살 만 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평생 떠나지 않으려는 것이고 심지어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짓이야말로 바보 같은 짓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건물은 물려줄 수 있으나 참된 신앙은 물려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교회를 자신의 소유로 착각하는 순간, 그의 사역이 병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녀들의 신앙도 망치게 됩니다. 더 많은 것을 물려줄수록, 더 화려한 것을 물려줄수록 당연히 그러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사무엘은 어린 시절에 성전에 바쳐져서 엘리 제사장의 손에 컸습니다. 또한 세례요한은 어린 시절에 광야에 나가 약대 털옷과 메뚜기, 석청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부모의 따뜻한 품에서 한없이 안락한 삶을 누린 자녀 중에서 과연 하나님의 사람이 된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주시는 고난을 부모의 인간적인 생각으로 감싸고 피하게 하는 일이 과연 그 자녀에게 좋은 일이 될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 안에는 자기 사랑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식을 타인으로 보지 않고, 나의 분신으로 여깁니다. 자식의 생김새가 나와 비슷하고, 그 성장의 모습이 자기의 젊은 시절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을 지혜롭게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랑이 지독한 이기심으로 나를 망치게 되는 것처럼, 자녀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자녀 사랑은 마땅히 절제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은, 자식을 나의 꿈을 대신 이루어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때문에 자식에 대한 나의 계획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순종하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부모들의 자녀사랑이 삐뚤어져 있는 것은, 결국 자기 사랑이 삐뚤어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반드시 자녀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행사하고 그 장래를 망치게 됩니다. 알고 하든, 모르고 하든 그렇습니다.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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