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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길로 가지 마라!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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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3


저는 26살에 결혼을 했고, 27살에 아빠가 되었습니다. 

그 준혁이가 올해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됩니다. 

우리 교회에 최동현 집사님이 저보다 생일이 몇 개월 빠르신데, 그 슬하에 두 공주님이 4살과 1살인 것을 보면, 내가 좀 빨리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난 딸이 없으니까 이것으로라도 위로를 삼을까 합니다!)

덩치는 나보다 크고, 코 밑에 시커먼 수염이 나고, 목소리가 굵어진 곰 같은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뿌듯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좀 더 넉넉한 환경에서 좋은 것 누리면서 자라게 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목사를 아빠로 둔 죄로 참 고생이 많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주일학교에 나가서 많은 것을 누릴 나이에 준혁이는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성도들의 아이를 맡아 돌보아야 했습니다. 어른들도 말이 쉽지 않다는 저의 설교를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들었으니 우리 아들이 참 힘들었을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맑은샘교회를 막 개척할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저의 할아버님께서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받은 준혁이가 그 지폐를 운전하는 저에게 내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이거로 교회 세우는데 쓰세요!”

그 말이 감동되고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아들의 그 한 마디는 저에게 천금보다 크고 힘 있는 용기가 되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준혁이는 참 많이 야단을 맞았습니다. 교회에서 섬길 줄 모른다고, 예배 태도 나쁘다고, 점잖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아이를 몰아대고 심하게 꾸짖을 때가 많았습니다.

아빠를 따라 갑자기 일본에까지 와서 말 통하지 않는 학교에 가야했고, 지금도 주일이면 교회에서 늦게까지 지체들과 함께 하는 엄마, 아빠 때문에 준혁이는 집에서 동생과 밥을 차려 먹고 집을 볼 때가 많습니다. 덕분에 요리 솜씨가 많이 늘었지만, 그럼에도 아무 불평하지 않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아비의 마음이 오히려 더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어찌 목회가 목사만의 일이겠습니까? 아내의 손이 물질에 갈라지고, 아들이 희생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목사가 설교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목사보다 더 음지에서 자기를 희생하는 가족들의 눈물이 있기에 제가 감히 하나님의 종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며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아들이 중학생이 됩니다. 미처 말은 못했지만, 준혁이가 교복을 입고 입학하는 모습을 처음 볼 때에는 아마도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고마워서, 기특해서, 여전히 미안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실 것입니다. 나도 내 자식에게 좋은 음식 먹이고, 비싼 장난감 사 주고 싶은 아비라는 것을. 나에게도 내 자식을 왕자처럼 키우고 싶은 평범한 아비의 욕심이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것을 버리고 포기하는 것은, 내 아들을 나의 아들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던 그 심정처럼, 내 손길보다 주님의 손길이 아이들을 위해 더 완전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준혁이가 많이 자라면, 아마 지금의 내 심정을 이해하는 날이 올까요? 

아마도 주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미안했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 사랑했음을 내 아들이 언젠가는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샬롬~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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