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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01 경제적인 교회 VS 본질적인 교회
  2. 2011.06.17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회


2012-12-02 목양칼럼 


경제는 효율을 중시한다. 들어간 것(input)이 있으면 반드시 나온 것(output)이 있어야 하며, 되도록 적게 투자하고 많은 것을 얻게 되는 경우를 성공적인 모델로 삼는다.

단순히 이 원리만을 생각하면, 복권이나 도박과 같은 일이 가장 경제적인, 혹은 경제다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률'이 저조하여 적은 것이지만 들어간 것에 대하여 전혀 아무 것도 안 나올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그것을 삼가 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자. 만약 어떤 사람이 도박이나 복권의 승리 확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그에게는 이 방법이 정당화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불법적인 일이 아니라면, 경제적인 큰 수익을 최소한의 노력으로 거두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며,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물론 이런 사람들에게 대박의 꿈은 있어도 대박의 현실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생각의 바탕, 곧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거두는 일이 남에게 일어나는 것은 배가 아파도, 나에게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고 감사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미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수 없는 깨어진 마음의 그릇을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잘 생각해 보라. 인격적인 성숙이 없이 재물을 많이 가지는 일은 어린 아이의 손에 칼을 들려주는 것과 같다. 결과적으로 그 재물은 자신의 인생을 망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되어 있다.

때문에 성공과 성장은 함께 일어나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수익을 거두는 것은 증권투자를 하는 방식으로는 정답(正答)일지 몰라도 인생에 대한 방식으로는 절대로 오답(誤答)이라는 것이다.

신앙을 가진 이후에도 여전히 마음의 주인은 맘몬(mommon, 가나안의 황금신)인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하나님께도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수익을 거두려고 하니, 마치 장사를 하는 장사꾼처럼 하나님 앞에서 처신한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진심으로만 하나님을 섬길 수 있고, 진심으로 사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진리와 축복이 부어진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는 심는 대로 거두는, 정직한 방법 밖에는 통하지 않는다. 신앙에 지름길은 없는 것이다.

교회도 그러하다. 교회가 크게 되면 성공을 한 것이고, 작게 되면 망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교회는 정직하고 바른 신앙을 추구하는 공동체로 남으면 작아도 큰 교회요, 정직함이 사라지고 복음이 옅어지면 큰 공동체를 이루고 연보를 많이 거두어도 실패한 교회이다.

하나님의 관점은 철저하게 본질적이다. 그것은 경제와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무엇을 더 가지려는 욕구 자체가 하나님께는 없다. 그러니 그 하나님 앞에 '협상'을 하려는 태도는 얼마나 가소롭고 한심하겠는가!

우리 마음에 맘몬은 없는지, 그리고 본질은 충실한지 다시 한 번 살펴보아야 하겠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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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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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9 목양칼럼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이 모든 문제의 본질이며, 해답이다.
그러나 완전한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용서를 필요로 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용서 받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친구의 도움이 없이는 누구도 위대해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여야만 하는 것이다.
사람은 평생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어쩌면 그게 교육의 본질이며, 사회생활의 요점이 아닌가 한다. 여기에는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위해 적절한 거리를 찾아내고, 조화를 유지하고, 나의 감정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는 것이 포함된다.
사람이 가깝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알고 항상 함께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과 상대방이 줄 수 있는 것 사이의 조절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귄다는 것은 설득과 이해의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설득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변하지 않고, 이해하지 않으면 내가 변하지 못한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감정이 아니라 설명이 필요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주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가 사랑의 관계에서 흔히 가지는 과욕(過慾)이다. 설사 사귐에서 그런 단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많은 설득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해도 중요하다. 인격적인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많이 좌절하고 힘들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며 인내할 때에 변화가 일어난다. 여기 요점이 있다. 결국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은 자신부터 변해야만 하는 것이다.
목회는 내가 생각해도 모순적이다. 비슷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변화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불완전함은 너무도 명백하다. 결과적으로 그가 말하는 논리, 주장, 신앙과 그의 삶은 어느 정도 부조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약점으로 인하여 교우들에게 갈등이 생기고 공격을 받는다는 것도 어느 정도 당연해 보인다. 목회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갈등의 상황에서 아파하고, 힘들어 하고, 자기 방어적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러한 부조리를 아시면서도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다는 사실이다. ‘교회’라는 공동체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섭리의 산물이다. 이것을 인정한다면, 목회자와 교우들은 모두 자기의 정의를 고집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성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교회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이며, 미래의 희망이다.
그리스도인의 주권은 언제나 주님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의 약점이 우리를 완전히 주관하지 못하도록 하고, 분열에서 교회를 지켜낼 수 있는 비결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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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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