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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3 살아있는 믿음


믿음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그 믿음이 올바른 믿음이 아니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믿음이 반드시 기적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바른 믿음은 항상 이성의 영역을 뛰어넘는 탁월한 결과들을 가져왔다. 그것은 결국 사람의 편에서 생각하면 기적이고, 하나님의 편에서 생각하면 응답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믿음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생명이 있는 믿음이다. 예수님도 믿음의 최소조건을 ‘겨자씨만한 믿음’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겨자씨는 ‘작다’는 말의 최상급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작은 것이 어찌 겨자씨만 있겠는가? 예수님은 모래알만한 믿음이나, 먼지만한 믿음이라고 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겨자씨’를 통하여 작지만 생명이 있는 믿음의 능력을 말씀하시고자 했던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믿음의 모양은 있으나 전혀 능력이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정의했다. 역시나 이 말씀에서도 중요한 기준은 생명이다. 믿음에 생명이 없다는 것을 치명적인 부족으로 이해하고, 이런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이 있는 믿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창세기의 2장에 의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생기를 받음으로 생명의 존재가 되었다. 흙으로 지어진 육신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생기를 통해 지어진 사람의 영혼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하셨던 것이다. 왜 사람만 그런 존재일까? 그것은 사람의 생명의 근본이 바로 하나님의 생기이기 때문이다. 

이 생기는 하나님의 호흡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바람이다. 그리고 이 태초의 바람이 사도행전 2장에서는 모든 성도들에게 부어져 ‘성령의 충만’을 가져왔던 것이다. 

성령의 충만이란, 육신은 살았으나 영은 죽은 자를 다시 살게 하는 것이며, 때문에 이것은 아담에게 호흡을 넣어 주시던 바로 그 장면의 리액션(reaction)이다. 

말하자면 창세기의 사람이 ‘생령’이 되는 것과 사도행전의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는 장면은 본질이 하나인 셈이다.

그래서 생명이 있는 믿음이란, 성령이 부어진 믿음이다. 

성령은 살리는 바람이시다. 태초에도 그러했고, 신약에서도 그러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때문에 성령의 은총 아래서 믿음은 살아난다. 성령만이 믿음에 생명을 부으신다.

이렇게 생명이 있는 믿음은 그 양이 문제가 아니다. 겨자씨만한 크기라도 결국에는 산을 옮기고야 만다. 

왜냐하면 겨자씨만한 크기로 계속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껍질을 깨고 싹이 나서는 점점 자라고 마침내는 거목(巨木)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것을 입증했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작은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마침내는 창대한 믿음을 이루었다. 바로 그들의 믿음에서 생명의 역사가 나타났던 것이다.

성령으로 믿고 있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의지로 믿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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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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