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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18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라
  2. 2011.06.17 자연으로 부르심
  3. 2011.06.17 때로는 부정적인 감정도 유익하다
  4. 2011.06.17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회

2011-06-17 목양칼럼

요즘 찬혁이가 시험기간이다. 본인의 말로는 시험공부를 매일 5시간 정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외에도 시험에 임하는 준비가 남다르다. 우선 밤 10시가 넘으면 무조건 잠자리 준비를 해서 늦어도 11시에는 잠자리에 든다. 잠자기 직전에 샤워를 하고 꼭 따뜻한 우유를 한 잔 마시는데, 이것은 숙면을 위한 처방이다. (평소에는 따뜻한 우유가 아니라 날씬한 몸매를 위해 감식초를 넣은 우유를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다시 샤워를 한다. 물의 온도가 중요한데 40도 정도가 적당하다. 이 정도 온도라야 온 몸의 세포가 깨어나 최선의 컨디션을 발휘하게 된단다. 또한 뇌를 위해서 꿀물을 한 잔 마셔준다. 적당한 당분은 뇌세포를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찬혁이는 말한다.
아들 녀석의 호들갑(!)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저 녀석이 뭐를 해도 하겠구나! 온 식구들의 눈치를 받으면서도 저렇게 컨디션을 챙기고, 자기를 아끼는 것을 보면 시험결과도 분명 나쁘지 않겠구나…’
사람은 믿음 속에서 성장한다. 특별히 자신에 대하여 어떤 믿음을 가지는가에 따라서 인생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자기를 믿는 사람은, 결코 자기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자기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면 타인의 인생도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그 상호작용에 의하여 사람은 위대하고, 아름답게 세워지는 것이다.
미래는 결코 불쑥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어제와 오늘의 결과이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굴곡(屈曲)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도 자기를 향한 믿음을 지키고 스스로 자기를 소중히 여길 때에, [=자중자애(自重自愛)] 마침내 희망의 해가 떠오른다. 어려운 때가 지나고 기회가 왔을 때에, 그는 그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실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관계를 되도록 넓게 하라. 항상 노력하고, 기회 앞에서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후회 없도록 살아야 한다. 그러나 기억하라! 이 모든 것의 근원은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내가 나를 믿고 사랑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자기를 편안함 속에 방치하며 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돌아갈 희망은 없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을 때에도 거울을 보고 말하라. 너는 소중하다. 너는 할 수 있다. 너의 꿈은 현실이 될 것이다. 그 날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자. 함부로 살지 말고 가장 소중한 사람답게 훌륭하게 하루를 살자!
유명한 처칠의 연설처럼,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자기를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이미 절망이다. 그러나 자기를 지키면 언젠가는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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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6 목양칼럼

먹구름이 짙게 일어난다. 계절이 바뀌고, 기후가 변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오래 살다 보니 모든 자연이 당연하게만 보이기도 하지만, 가끔 창가에 서서 사색에 잠기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놀란다. 자연은 내게 경외심을 불러 일으킨다. 세상이라는 것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광대한 대상이라는 것과 그 광대한 세상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여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조건들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하나님은 결코 멀리 계시지 않는다. 빌딩 사이로 푸른 잎사귀 무성한 나무가, 다가오는 먹구름이, 장마가, 들꽃이 내게 그분을 느끼게 한다. 그분이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분인지, 그리고 그분의 목소리가 얼마나 우렁차고, 열정적인지 자연이 계속 말해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소중히 여기듯이 자연도 가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이 논리와 철학의 신이 아니라, 만물의 아버지시며 지금도 자연을 통해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배우기를 바란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하나님과 동산을 거닐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건물과 첨탑을 세우시지 않았다. 거기에는 자연이 있었다. 자연은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이며, 계시였다. 그 안에서 사람은 태어나고, 자라고, 성숙했다.
성경을 보면, 다양한 자연의 현장이 신앙의 중요한 깨달음과 함께 등장한다. 빈들이나 광야, 들판, 산자락, 산의 정상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었고 하나님을 경험했다. 그러나 오히려 거대한 성전이나 건축물에서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매우 적다.
물론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훈련 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을 다치게 한다. 아주 조심해도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한계인 것 같다.
다친 마음과 정서를 편안하게 하고, 치유하는 능력이 바로 자연 속에 있다. 나무 가득한 숲길을 산책하고, 시원한 들판의 바람을 느끼고,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듣고, 따뜻한 볕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꽃을 감상하고, 흙을 만지고, 동물과 대화 나눌 때에 사람은 사람답게 회복된다.
기도하기 위해 산에 가라. 성경을 들고 숲으로 들어가라. 한가한 공원의 벤치나 나무 많은 고궁이라도 좋다. 그곳에서 성경 한 구절을 읽고, 자연을 응시하라. 생각하라. 느껴라.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실 기회를 드려라. 그리고 당신의 지친 영혼과 마음을 그분이 자연으로 어루만지시게 하라. 조용히 찬양을 부르라. 감사하라. 또 감사하라.
사람은 외면적으로 강하다고 강한 것이 아니다. 많이 웃고, 울고, 감정적으로 풍부할 때에 오히려 더욱 강해진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만드시기 위해 자연으로 부르신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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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5 목양칼럼
한 해병이 있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이 병사는 언제나 작전에서 목숨을 걸었다. 그는 다른 병사들이 두려움에 떠는 것을 보면 화가 났다. 나약한 모습이야말로 수치라고 생각했고, 어떤 경우에도 떨지 않는 자신에 대하여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던 그가 한 전투 지역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소에 극히 존경하던 전쟁영웅을 만나게 되었다. 해병은 자신의 새로운 상관에 대하여 무한한 존경심과 신뢰를 느꼈다.
얼마 후, 전투가 벌어졌다. 해병은 더 용감하게 적진으로 돌진했다. 자기의 영웅 앞에서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이 그를 아주 흥분시켰다.전투가 끝나고 밤이 되었을 때에, 보초를 서고 있는 이 병사 옆으로 영웅이 다가왔다.
“자네는 용감하더군. 죽음이 무섭지 않는가?”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저는 언제라도 명령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훌륭하군. 나는 아직도 두려운데…” 
순간 병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기의 영웅이 이런 나약한 소리를 입에 담다니… 하지만 그의 영웅은 미소 지으며 계속 말을 했다.
“이봐, 전투에서의 두려움은 그렇게 나쁘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네. 나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렀지. 그럼에도 내가 아직까지 살아남아 전우들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은, 두려움을 몰랐었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용할 줄 알았기 때문이라네. 우리는 죽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것이네. 난 자네가 좀 더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행동했으면 하네. 꼭 죽어야 한다면 정말 중요한 일을 위해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병사는 홀로 남아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는 진정한 용기가 적진을 향한 ‘전진’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약한 병사들을 조롱하던 자신의 어리석음도 후회했다. 승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흥분된 감정이 아니라, 침착함과 인내심, 그리고 전우들을 믿고 자기를 희생하려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자기의 생명과 전우들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오히려 적에게 이용만 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하나님께서는 불필요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부정적인 감정들도 우리에게 유익하다. 그런 감정들은 우리 자신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사인(sign)이거나, 경고(siren)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감정들에 대하여 좀 더 신중을 기한다면,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요즘 느낌이 좋지 않은가? 그렇다면 신중하라. 그 느낌 안에 숨겨진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라. 경솔함을 용기라고 착각하지 말라. 꼭 죽어야 한다면 죽을 만한 일을 골라서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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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9 목양칼럼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이 모든 문제의 본질이며, 해답이다.
그러나 완전한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용서를 필요로 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용서 받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친구의 도움이 없이는 누구도 위대해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여야만 하는 것이다.
사람은 평생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어쩌면 그게 교육의 본질이며, 사회생활의 요점이 아닌가 한다. 여기에는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서로를 위해 적절한 거리를 찾아내고, 조화를 유지하고, 나의 감정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는 것이 포함된다.
사람이 가깝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알고 항상 함께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과 상대방이 줄 수 있는 것 사이의 조절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귄다는 것은 설득과 이해의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설득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변하지 않고, 이해하지 않으면 내가 변하지 못한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감정이 아니라 설명이 필요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주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가 사랑의 관계에서 흔히 가지는 과욕(過慾)이다. 설사 사귐에서 그런 단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많은 설득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해도 중요하다. 인격적인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많이 좌절하고 힘들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며 인내할 때에 변화가 일어난다. 여기 요점이 있다. 결국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은 자신부터 변해야만 하는 것이다.
목회는 내가 생각해도 모순적이다. 비슷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변화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불완전함은 너무도 명백하다. 결과적으로 그가 말하는 논리, 주장, 신앙과 그의 삶은 어느 정도 부조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약점으로 인하여 교우들에게 갈등이 생기고 공격을 받는다는 것도 어느 정도 당연해 보인다. 목회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갈등의 상황에서 아파하고, 힘들어 하고, 자기 방어적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러한 부조리를 아시면서도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다는 사실이다. ‘교회’라는 공동체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섭리의 산물이다. 이것을 인정한다면, 목회자와 교우들은 모두 자기의 정의를 고집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성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교회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이며, 미래의 희망이다.
그리스도인의 주권은 언제나 주님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의 약점이 우리를 완전히 주관하지 못하도록 하고, 분열에서 교회를 지켜낼 수 있는 비결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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