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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4


그리스도인에게는 두 개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을 일컬어 ‘죄인 중의 괴수’라고 자청합니다. 이것은 결코 회심한 직후의 고백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많은 핍박을 감수하며 목숨을 내어놓는 헌신을 다한 이후, 곧 그의 죽음이 임박하여 했던 고백이라는 점에서 우리를 더욱 숙연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처럼 작은 ‘바울’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빌립보서에서 ‘나도 육체를 자랑할 만하다’고 말합니다(3장). 또한 그의 사도됨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향하여는 자신이 주님의 사도됨에 대한 강한 주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두 개의 얼굴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정한 흐름 속에서 조화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사도바울이 은혜 안의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섬겨 말할 때에는 언제나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에 두고자 했으며, 반대로 세상을 향하여는 그 무엇에도 자신을 굽히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향하여는 사자(獅子)같지만, 하나님을 향하여는 어린 아이처럼 연약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향하여는 항상 목마른 사슴이 되고, 세상을 향하여는 항상 골리앗을 압도하는 영적 거인(spiritual giant)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무가치한 존재를 향하여 거룩하게 낭비되는 사랑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조건 없이 사랑이 부어질 때에, 그것을 우리가 은혜라고 합니다. 하지만 은혜가 부어지면, 그 대상은 더 이상 가치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어진 ‘은혜’만큼의 가치가 그 존재를 덮게 되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보면, 꼭 반대로 행하는 신자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교회를 향하여는 사자처럼 용맹한데, 막상 세상의 돈과 명예 앞에서는 한없이 연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수치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신자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눈물을 흘리려거든 기도의 골방에서 흘리십시오. 거기서는 온갖 신음을 다 쏟아도 됩니다. 걱정도 좋고, 푸념도 좋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잠잠하십시오. 그분의 전능하심 앞에, 초라한 자기를 충분히 내어놓고 거룩한 학대로 한없이 망가지는 경험을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로 더 아름답게 재탄생하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눈물 흘리지 마십시오.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없음’이 아니라 ‘열등감’일 뿐입니다.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지금 주시지 않는 것은 타이밍의 문제이거나 혹은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가슴을 활짝 여십시오.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당당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 외에 우리는 무엇으로도 약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강하고 담대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밖에서 얻어터지고 우는 아이보다 부모를 더 속상하게 하는 아이는 없을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샬롬~


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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