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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4



전라도 화순 적벽의 은행나무 이야기를 보았다. 

은행나무는 대개 암수나무가 같이 있어야 은행이 여는데, 적벽의 은행나무는 외짝인데도 해마다 가마니로 거둘 만큼 은행 소출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에게 은행나무 혼자서 어떻게 은행이 열리느냐고 물었더니, 적벽의 물에 드리운 제 모습을 서방님 삼아 은행알을 낳는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그 은행나무에 은행이 여는 건 그곳 사람들의 생각과 같은 건 물론 아니다. 은행나무는 수나무가 10리 밖에 있어도 바람을 타고 암나무를 찾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과학적인 상식만 중요한 건 아니다. 사물이나 자연의 이상한 움직임을 눈여겨보고, 그에 걸맞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건 인간의 고유한 장점이다. 

생땍쥐베리는 <어린왕자>를 통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는 아이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어른’의 의미로 표현했다. 때문에 <어린왕자>에는 과학과 이성을 뛰어넘는 상상력들이 난무한다. 그것은 풍자스럽지만, 결국에는 이면에 감추인 본질을 정확하게 조명한다. 아이들의 동화 같은 이 책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어른들의 손을 떠나지 않는 이유이다.

생각이 굳어지면 자기의 틀에 갇히게 된다. 유리판을 덮은 그릇에 넣어 두었던 귀뚜라미 이야기를 들었는가? 온몸으로 유리판과 충돌하던 귀뚜라미는 결국 유리판을 치워도 더 이상 높이로는 뛰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그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문제이다. 마음이 갇힌 사람은 현실도 갇힌다. 

형편에 맞는 것만을 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물론 사람은 처해진 상황을 직시하고 자족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없는 형편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사치나 욕심을 부리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거룩한 욕심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떤 것들에는 낭비해도 괜찮다. 

형편(形便)이라는 말의 의미는 모양을 편안히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모양은 꼭 현실과 육체의 모양만은 아닐 것이다. 보다 신앙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마음이야말로 우리 모양의 근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바로 사람의 마음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형편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은, 그래서 현실뿐 아니라 우리 마음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마음의 상상력이 죽지 않도록,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스스로 자기를 돌아보며 살아가는 것이다.

가난한 주머니로 컵라면을 사먹고, 커피는 멋진 카페에서 마시는 것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그건 사람만이 하는 짓이다. 비록 그 모양새가 그의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아 철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괜찮다. 그의 삶에 그런 부분이 있기에 마음이 덜 굳어지고, 상상력이 살아 있으며, 눈에 호기심이 어려 날마다 총기로 빛날 수 있다면 그것도 그의 형편(形便)에 딱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두려운 것은 우리 마음이 굳어져 우리 현실이 생각의 감옥을 이루는 것이다. 갇힌 마음은 기도하는 것조차 방해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정말 딱하게 여기신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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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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