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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길로 가지 마라!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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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8 목양칼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자신감 있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세월은 무시하지 못할 무게로 다가온다.

특별히 청춘이 다하고 중년에 들어서면 더욱 조급한 마음이 들게 되는 것 같다. 조바심을 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알면서도 그 마음의 조절이 쉽지 않다.

청춘의 특성이 ‘내일’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라면, 장년의 특성은 ‘오늘’의 가치를 발견하고 붙잡는 것이 아닐까?

철학자 몽테뉴는 말하기를,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다른 모든 날을 결정해 주는 날이다. 라고 했다.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인생은 내가 막을 내리기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이 있다는 것은, 언제나 인생에 반전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오늘이 인생 전체를 결정하는 중요함을 가지는 까닭이다.

영화 ‘아메리카 뷰티’에는 비슷한 대사가 등장한다. 오늘은 당신의 남은 인생에서 첫 번째 날이다. (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your life.)  

정말 벼락 같은 금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어떤 사람은 하루라도 젊을 때에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고, 하고 싶은 것을 즐기자고 말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욕망을 따라 살자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과연 그런 삶이 만족을 줄 수 있을까?  얼마나 먹으면 실컷 먹은 것이요, 얼마나 즐기면 후회하지 않을까… 불행하게도, 욕망은 바닷물과 같아서 먹으면 갈증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갈증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욕망을 따라 살면 반드시 절망에 다다른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른 소망이 있다. 하루라도 젊을 때에, 주님을 위하여 더 열심히 살고자 하는 바램이다. 말씀을 공부하는 것도, 선교지에 나가는 일도, 자기를 바꾸는 일도 오늘이어야 한다. 내일 하겠다고 생각하면 결국에는 못하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일은 오늘 같은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내일은 내가 오늘과 같이 여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세월을 아끼라 하셨다.(엡5:16) 오늘의 가치를 깨닫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내일은 내일에게 맡겨두고, 오늘에 집중하여 살라는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오늘을 흘려 보내지 말라는 것이다. 아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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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출판사
나무의철학 | 2012-10-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 번은 길을 만든다!428...
가격비교


PCT ,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의 약자.

무려 도보로 산맥을 타고 4천 킬로미터의 길을 걷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글은 길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여행의 기록이다.

저자는 스물 예닐곱의 무렵에 있었던 여행을 무려 15년이 지난 이후에 회상하며 글을 썼다.

하지만 글은 여전히 생생하며, 마치 지금 그 노정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지독한 고독의 여행이 얼마나 깊이 각인되어졌는지, 그리고 그 여행의 결과가 얼마나 뚜렷하게 한 인간을 성장시켰는지 다시 되짚을 수 있다.



책을 보면서 내내, 걷고 싶다는 충동을 받았다.

나도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 낯선 길에서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새로운 내가 뭔가 대단한 희망을 세상에 던질 수 있지는 않을까? 


세릴 스트레이드의 '스트레이드'는 이혼 후에 스스로 정한 새로운 성(姓)이다. 미국에서는 부모의 성을 따르다가, 결혼과 함께 남편의 성을 가지게 되고, 다시 이혼을 하면 부모의 성으로 돌아가든가 자기가 스스로 자기의 성을 새로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 세릴은 이혼을 겪었다. 그래서 그녀는 '스트레이드' 라는 성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 의미는 길을 잃고 헤맨다는 뜻이며, 그것이 그녀가 느꼈던 인생의 느낌이다. 그러나 그 스트레이드는 불행과 절망이 아니라, 바로 누구나 인생에서 그럴 수 있다는 위로로, 그리고 새로운 도전으로 승화되었다.


일단 재미있다. 시간이 빨리 가는 책이다. 제법 두껍지만 생각만큼 길지는 않다. 그리고 생각하게 한다. 

하나 더 부연한다면, 청소년에게 권할 책은 아니다. 사실적인 자기 경험의 고백이다보니, 마약과 성적인 경험에 대한 내용들도 들어 있다. 그녀가 이 책을 저작할 당시에는 두 아이의 엄마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을텐데 이런 고백들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미국식이라 가능한 것일까?

혹여, 재미있고, 자극(삶에 대하여)을 주며, 시간을 펌프질할 책이 필요하다면 한 번 권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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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4 :: 목양칼럼

 

인생에 있어 가장 크고 소중한 재산은 자기 자신이다.

아무리 요란한 풍랑도 자신을 날려버리지는 못한다. 죽지 않는 이상, 자신은 남을 것이고, 그렇다면 거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인생에는, 오직 자신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몇 번은 오기 마련이다.

그 순간에 우리는 자기와 깊게 만난다. 만약 자신을 잃고 살아왔다면, 그 순간에 가장 절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지키고 가꾸며 살아왔다면, 그 순간에 자부심을 얻게 될 것이다.

신앙은 자기를 버리는 길이다. 그러나 그 버림은, 쓰레기처럼 그저 내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앙 안에서의 버림은 진정한 자기를 얻기 위한 과정이다. 욕망과 습성에 갇힌 자기를 버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지으신 본래의 자기를 얻으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해방자로 오셨다는 말이 무엇인가? 그분은 노예나 여성을 해방시키는 일을 위해 칼을 잡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의 순간에 칼을 잡는 제자를 향해, 칼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칼로 망하게 될 것이라 경고하셨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해방자가 분명하다. 그분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여 우리 맘대로 섬기려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셨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를 되찾게 하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信者)는 신자(神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자신을 깊이 만나는 일이다.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는가? 왜 그렇게 가지고 싶은 것이 많은지?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목마른 '나'에 대하여 깊이 허전하지 않는가? 어떻게 하면 이 야생마 같은 나를 길들여서,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 가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게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 않은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를 찾지 않는 것은 제일 어리석은 일이다. 아무리 많은 기도를 하고, 아무리 열심히 성경을 읽어도, 그것을 자기와 묶지 못하면 신앙은 실패한다. 그것은 바리새인의 습관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하자. 시끄럽기만 하다. 이제 정중하게 앉아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라.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신앙과 인격에 대하여 말해 보라. 자기를 정직하게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게 허전하고 부실하기 때문에, 늘 인생이 불안하고 신앙은 허약하며 꿈이 연기처럼 그저 흩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혹시 지금은 아니라도, 인생에는 반드시 모든 겉옷을 벗고 벌거벗은 자기와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부디 그 날에 당신은, 성경이 말하는 복 있는 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자기만 넘어지지 않는다면, 자기만 확실하다면, 우리가 넘지 못할 산은 없고, 우리가 이기지 못할 시련도 없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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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9 목양칼럼



인생은 사실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으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거창한 목표를 두고서 노력하는 삶이 아름답지만, 그런 삶의 태도가 가진 함정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사람은 사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내고 삶의 동력(動力)을 얻어내지 못하면, 무슨 거창한 일이든 그리 오래 집중할 수 없다. 설사 오랜 시간을 견디어 내더라도 그런 삶은 행복하지 못하다. 그리고 행복하지 못한 것은 결과적으로 아주 나쁜 것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인생관은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쓰자는 한 문장으로 함축된다.

다소 경박스럽기는 하지만 현실감이 참 탁월한 표현이다. 공정하지 못한 세상에서 정직과 성실의 한계를 절감하며, ‘생존이라는 절박한 목적을 위해 자기의 양심과 자존심을 어느 정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 부모님의 세대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정신 없이 살았다. 서양이 두 세기에 걸쳐서 이룩한 산업화를 50년 만에 따라잡았으니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정신 없었겠는가? 아마도 4배속으로 돌리는 비디오 속의 세상처럼 세상이 흘러갔을 것이다. 그래서 생존은 절박했고, 정승 같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개처럼 사는 것도 불사하는 각오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한 평생을 보내고, 적지 않은 결과를 손에 쥐었다. 집이 생기고, 차가 생기고, 금융자산과 인맥이 생기고,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천 리를 마다하지 않는 주머니가 생겨났다.

그러나 그 잉여의 자산들은, 여전히 마음의 여유는 되지 못하고 있다. 부지런한 것도 좋고 자기를 바꾸는 노력도 좋은데, 그 일상에서 삶의 시간은 늘 모자라고 관계의 기쁨과 공감은 바싹 메말라 버린 것이다. 결국 그렇게 손에 넣고자 했던 것들, 이를테면 눈에 보이는 물질을 차지하는 것은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행복한 자기를 완성해가는 인생에서는 낙제한 것에 틀림없다.

 

소유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소유가 주는 잠시의 기쁨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것을 가지면 잠시는 기쁘다. 그러나 사람은 소유한 것에 금새 적응하고 빨리 싫증을 낸다.

소유한다는 것은 마치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배가 터질지언정 만족함을 얻지는 못한다.

그래서 사람은 스스로 인생을 발견하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린 후에야, 비로소 행복을 얻는다.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바로 바람 부는 저녁의 산책을, 비 오는 날의 커피 한 잔을, 뜬금없이 불러낼 수 있는 친구를, 출출한 저녁의 냄비라면을 발견하는 사람이라야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좋은 날도 있고 어려운 날도 있다. 역시나 어려운 날들을 견디게 하는 힘은, 과거의 좋은 날들에 대한 추억이며 동시에 앞으로 다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일 것이다. 그러나 행복을 이렇게 과거와 미래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사실, 마음의 눈을 뜨면 가장 어려운 날들에도 가장 행복한 일상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발견하고 누리는 마음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지혜가 아닐까?

지금을 개처럼 살지 말라. 개처럼 살다 보면, 정승 같은 날이 오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개가 될지도 모른다. 지금을 정승 같은 마음으로 살아라. 설사 정승이 못되면 어떠랴! 꼭 정승이 되야 행복한 것도 아닐진대, 정승이 되겠다고 사람이 개가 될 각오까지 해서야 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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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8 목양칼럼

 


하늘은 붉게 물들었다. 벌써 뉘엿뉘엿 해가 담장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투수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9회말의 그라운드에 들어설 때만 하더라도 경기는 맥없이 끝날 것만 같았다. 전광판의 숫자는3:0이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사실은 지난 8회의 이닝 동안 상대팀은 단 하나의 안타도 얻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투수는 완봉승을 노리고 있었다.

절묘하게도 마침 타순은 3번부터 시작되었다. 타자는 투수의 첫 공을 노렸다. 투수 옆을 스치는 직선의 타구가 원 바운드로 날아갔다. 잘 하면 빠질 수도 있는 공이었지만 유격수는 노련했다. 몸을 날려 그 공을 잡은 것도 모자라 거의 동시에 역동작으로 1루에 송구했고, 공은 정확하게 첫 타자를 아웃 시켰다. 투수의 눈이 승리의 확신으로 빛났다.

감독은 4번 타자를 거르고 다음 타자를 상대하라는 싸인을 냈고, 배터리는 캐치볼처럼 4개의 볼을 주고 받으며 감독의 명령을 수행했다. 불안감은 전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 타자가 들어섰다. 그는 5번이지만 오늘은 그의 방망이가 볼에 스치지도 못했다. 투수는 자신감이 넘쳤고 얼굴에 약간의 비웃음마저 감돌았다. 역시나 2개의 연속 스트라이크가 들어왔다. 타자는 타석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바튼 기침을 했다. 영리한 투수는 바깥으로 깊게 빠지는 유인구를 던졌다. 어이 없게도 타자의 손이 자석에 끌리는 쇠붙이처럼 끌려나갔다. 타자는 속았다는 느낌에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 눈 감은 방망이에 볼이 걸렸다. 어설프게 맞은 공은 내야에서 불규칙 바운드를 일으켰다. 내야수들이 재빠르게 공을 처리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타자와 주자 모두 세이프가 되고 말았다.

6번 타자가 들어섰다. 좋은 분위기를 이어갈까? 운동장은 숨죽여 타자와 투수에게 집중했다. 투수는 주의 깊게 공을 던졌고 타자 역시 몇 개의 볼을 파울로 커트하며 투수와 겨루었다. 어느새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 이제 승부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투수는 최대한으로 바깥쪽 낮은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했다. 타자가 움찔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심판은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포볼이었다. 타자가 1루로 걸어가는 동안 투수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심판을 응시했다.

화가 났던 것일까? 투수는 7번 타자를 강속구로 몰아 부쳤다. 4개의 공이 지나도록 방망이를 흔들지 못하던 타자는 5번째 공을 향해 힘껏 스윙을 했다. 그러나 공은 높이 내야 위로 뜨고 말았다. 3루수가 약간 자리를 움직여 공을 잡았다. 마침내 9회말 투 아웃이 된 것이다.

감독은 이상하게도 대타를 세우지 않았다. 8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오늘 경기뿐만이 아니라 최근의 10여 경기에서 전혀 안타를 치지 못하고 있었다. 본래 5번이었던 그의 타석이 8번까지 밀린 것은, 부진에 부진을 거듭한 결과였다. 관중은 야유했다. 투수와 포수 역시 가벼운 웃음을 교환하며 빨리 경기를 끝내자는 모종의 싸인을 주고 받았다.

투수는 처음부터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낙차가 크면서도 빠른 스플리터(Splitter)였다. 공은 살아있는 뱀처럼 파고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타자의 허리가 부드럽게 돌았다. 팔과 다리의 근육들이 힘줄을 돋으며 제대로 힘을 실어낸 한 방이었다. 공은 직선으로 정확하게 운동장의 한 가운데를 뻗어나가 전광판의 상단을 때렸다. 홈런이었다… 9회말 투 아웃, 그리고 그 시즌에 가장 부진했던 선수의 팔에서 나온, 역전의 홈런이 운동장을 뒤집어 버렸다…

야구는 바로 이런 맛으로 즐긴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9회말 투 아웃,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언제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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