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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죄인이다

- 세월호의 희생자를 추모하며...



얼음 같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우리 새끼들의 얼굴이 보고 싶어

나부끼던 노란 깃발은

죄 많은 애비애미의 얼굴과 함께

낡고 헤어졌다

한 해가 다 가도록 우리는 너희 앞에

죄인이다, 이 모순의 땅에서

탐욕도 거짓도 걷어내지 못한

무능하고 초라한 어른이다

맘몬을 위해 자식도 바쳤다는

가나안의 미신처럼

경제와 번영의 이름으로

너희들의 시신을 덮으려는 어둠의 표정은

얼마나 추악하고 해괴한가


아들아, 네 낡은 교복의 냄새가

봄꽃처럼 그립다

딸아, 네 고운 목소리 지껄임이

숨구멍처럼 간절하다


그래서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이런 땅에선 죽어도 죽을 수가 없다


얼음 같은 바다에서

내 새끼 푸른 이름 꺼내 놓기까지

침몰한 진실을 인양하기까지

우리 모두 평화를 얻기까지

우리는 죄인이다,

너희와 우리의 창조주 앞에서

도저히 할 말 없는 죄인이다


여전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우리의 얼굴이 이래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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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헐벗은 나무 아래에서

나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추위에 오그라진 손을 불어가며

식은 도시락을

오물거리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여전히 당신은

춥고

배고프고

외롭고

고결합니다


눈이 부시도록 환한 미소가

가난한 어깨 위로

해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 숟가락의 밥을 떠서

상처 받은 새들에게 던져주는

당신의 손길 아래로

생명은 모이고 흩어집니다

시간은 머물고 화사해집니다


당신은 아직도 왜 가난합니까

목수의 옷을 벗고

나그네의 신을 벗어도 될 만큼

오랜 세월히 흘렀지만

당신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이고

여전히 가슴 떨려오게 환합니다


당신의 행복은 

우리의 행복과 많이 다른가 봅니다

그래서 자꾸만 물끄러미

당신의 웃음을 보고 또 보게 됩니다

내 겉옷을 벗고 싶을 만큼

보게 됩니다

당신은 여전히 가장 행복한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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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世越 : 경계를 넘다)



슬픔의 시대를 노 저어 주께로 갑니다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실 하나님의 손을 그리며


나의 하나님 예수는,

자식 잃은 어미와 타 들어간 아비의 시커먼 가슴을

못 자국 난 손으로 어루만져 주실 것입니다

왜 우냐고 묻지도 않으시고 품에 안아 함께 우실 겁니다

성경에서 늘 그러셨던 것처럼

내 인생에서 늘 그러셨던 것처럼


오해하지 마세요, 제발

하나님은 아이들을 바다에 빠뜨려 죽게 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는 부모를 미개하다 하시지 않습니다

사랑과 자비가 끝이 없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을 증오와 복수의 하나님으로

절대로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왜 이런 슬픔이 있는지 제대로 모르지만

이것이 죄와 탐욕과 악함의 뿌리에서 나온 일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타락한 사람들의 일입니다

우리는 그 비참한 바다를 건너서

치료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겁니다


다친 마음에 용기 주시기를

이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거절당한 기도에도 자비가 따르기를

눈물 흘리는 모든 부모들의 손끝에서 꽃이 피기를

떠난 아이들을 긍휼히 여기시를

내 조국의 앞날도 이끌어 주시기를




촛불 기도회


미국에 올려진 광고




아이들을 구하다가 산화했으나
정부의 원칙고수로 합동분양소에 들어가지 못했던
박지영 승무원


아래의 사진은 단원고 반의 기념촬영
이 사진에서 두 명만 생존했습니다



서울시청 광장에 그려진 시민들의 노란 리본



청계천 광화문에 모인 촛불집회



자기 자식을 걱정하면서도
아이들을 구하러 갔던 양대홍 사무장




세월호의 의인 다섯명



세월호를 통해 알게된
대한민국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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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크 카페에서



어스름한 저녁에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들어간 카페에서

새처럼 재잘거리는 아이와

우아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는 여인과

피곤에 찌든 남자와

깊은 주름 속에 빛나는 노인과

손톱을 칠하는 소녀와

어설픈 외국어를 구사하는 나를 보았다


산 마르크,

예수의 제자였던 그는 오늘

무슨 빵을 먹었을까?

행복한 하늘 저편에서

창가에 앉은 내 찻잔 위로 흐르는

어색한 낙엽의 춤

그래, 삶은 언제나 아름답다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어둠이 시야를 방해할 즈음에야

분위기 좋은 등이 켜진다

카페를 나서려고 할 때에야

듣고 싶었던 음악이 나오기 시작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약속을 해도 만나지지 않고

피하고 싶었던 사람은

간발의 차이로 내 앞을 가로 막는다

그래, 싫어하지 말자

그러면 두리번 거리며 문을 나설

일도 없지 않으랴


오늘도 우리 동네는

맛 있는 빵과 구수한 커피로

가을처럼 붉게 익어간다

참 좋은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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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에게 물어라



생명이란 얼마나 모질도록 간절한가

대리석 보도블럭의 틈새로 자라난 풀이 말을 건다

이렇게 해볼 수 있겠냐고? 

천 근 돌에 눌리고 하늘은 보이지도 않아도

틈새로 스미는 햇살, 바람, 빗물을 아껴 먹고 

마침내 뿌리를 뻗어 자라난 이 고상한 풀이

나처럼 해보라고 말을 걸고 다리를 잡는다


들의 풀만도 못하다, 사람이

산다는 것의 찬란함을 겸손하게 배우고 보면

존재의 매일이 기적이고 은총인데

그걸 모르고 돌로 떡을 만들어 달라고 아우성만 친다

아서라, 돌은 떡이 되어도 달라질 것이 없단다

맘이 변해야 비로소 변하지

풀에게 말을 걸어라, 너는 어째서 거기 태어났냐고

너는 어떻게 그토록 간절하게 살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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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터기

혼자말/靑情 / 2013. 6. 13. 21:36


<그루터기>


늘 거기 있으라
흘러가지 말고 제자리에
자기다운 모습으로 또렷이
거기에 못박혀 있으라
함께 가자고 손짓을 해도
비바람이 불어도
혼자 뒤떨어진 것처럼 초라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곳에 있으라

눈물이 흐른다는 것은
아직 마르지 않은 샘
누군가 울어줘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너라도 울어줘야 하지 않겠나
거기 있으라
땀과 눈물로, 탄식으로, 한으로
기쁨으로, 희망으로
자녀를 위해 눈물로 씨를 뿌리며
처연하게 서 있으라

어느 날엔가
폭풍의 언덕에서 햇살이 피고
숨이 땅에 돌아오는 아침
네 자리가 나의 자리가 되어
샘이 터지고
포도나무가 들판을 달리고
멈추었던 노래가 다시 들리며
죽음이 떠나가고
생명이 돌아온 것을 춤출 때까지
죽더라도 거기 있으라
그곳에 깊이 서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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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사람

혼자말/靑情 / 2013. 6. 13. 13:04



<꽃과 사람>



네가 기쁘지 않으면 
네 향기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꽃이라서 향기가 날까?
향기가 나서 꽃이라 할까?

향기는 섞고 만들기도 하더라만
꽃은 결국에 꽃인게지

모양도 좋고 말은 잘해도
좋은 사람이 아니면 무엇하랴

사람부터 되고서야
이도 저도 값어치가 있는게지

복 받을 짓을 하더라도
복 받을 사람이 되지 못하면

결국에는 본색이 나오더라

사람도 아는 것을 설마 모르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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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노래

혼자말/靑情 / 2013. 6. 11. 19:49



<양의 노래>


보이지 않아도
들판의 냄새가 바람에 실려
내 안으로 충만하게
터질 것 같이 부풀어 오르게
가슴을 두드려 두드려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와
다리는 버둥,
무거운 엉덩이야 조금만 더 가자
이제 얼마 남지 않았겠지
거의 다 왔을꺼야
분명해

내게 당신이 있어 좋습니다
눈 앞의 풀은 먹어 사라져도
시들어 넘어져도
당신은 결코 그러하지 않습니다
묵묵히 앞을 걸어
나를 또 다른 생명의 들판으로 
언제나 인도합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따라 걸어가는 것은
내게 더이상 막연함이 아니라
떨리는 기대입니다
이제,
나는 풀이 아니라 당신을 봅니다

나는 풀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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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하루가 버겁다

세월의 무게야 말할 필요도 없고

사람 어우러진 관계

나이를 먹어 늘어가는 책임들

그 가운데 사람처럼 산다는 것은

늘 낯설고 괴상한 일이다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때로는 모든 것에서 떠나

훨훨 자유롭고 싶어도

꽃은 꽃다울 때 예쁘고

새는 새다울 때 자유롭듯

결국은 내 삶의 여기가

내 희망의 땅이 아닐까 가슴을 

어루만지며 산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힘들지 않은 삶이 있으랴

살았기에 고뇌하고

그래서 한 걸음씩 앞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더냐

허튼 생각에 빠져 허덕이지 말고

잘 다독거려야지

내 심장 상하지 않도록

내가 먼저 사랑해야지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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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꽃이 있으랴>


이름 없는 꽃이 있으랴
내가 모를 뿐
누군가는 너의 이름을 알고
이미 불러주지 않았으랴

의미 없는 일이 있으랴
내가 모를 뿐
조물주의 심중에서는 
작고 섬세한 꽃을 피우듯
이미 작정한 일이 아니더냐

우연은 없다
때문에 산다는 세월에
헛된 것도 없더라
모르고 아는 구별이 있을 뿐
삶은 모두 
바람 속으로
비를 지나고 눈밭을 걸어가
꽃을 피우는 일

그래서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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