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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길로 가지 마라! makar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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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3.03.16 들꽃
  10. 2013.03.12

가로등

혼자말/靑情 / 2013. 4. 14. 01:02



<가로등>



여기가 네 자리다

세우신 곳에서

춥고 외롭고 떨리는 밤을

무수히 맞았어도

어둠은 아직 그대로

바람은 내 곁을 휘돌아만 갑니다


멀리 보이는 광장에는

무수한 빛이 마주 서 도열하고

외롭지도 춥지도 

않을 것만 같은데

나는 왜 이런 곳에 세우사

이렇게 청승맞게 하셨습니까


내 곁에도 사람들을

떠들고 뛰어 놀 아이들을

무수한 그림자를

푸른 잎사귀의 가로수를

허락해 주옵소서

목 놓아 울며 원했던 것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새벽이 찬란하게 밝아오면

내 초라한 몸둥이는

오히려 긴 그림자를 흔들며

꺼져 갑니다 

나를 세우신 자리에서

내게 부탁하신 인내를 배우고

당신 때문이라고

내가 살아 빛났던 순간이

기둥 같은 당신 때문이라고

마지막 말을 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광장보다는 어두운 이곳에

당신이 염려하고 

안스럽게 사랑하는 이들이

몇몇 있다는 것을

그들을 위해 나를 세우신

그 가슴 뻐근한 사랑을

이제는 같이 앓고 있습니다

하여, 원망은 없습니다


남겨진 소원이 있습니다

그 찬란한 새벽을 기다리며

내 불안한 빛을 꺼뜨리지 않는 일

다시는 부러워하지도

내 어둠에 갇혀 절망하지도

않는 일

당신이 붙여주신 이름답게

빛다운 빛으로

살아남아서 내 섬기는 그들의

앞길을 어둠 없이 밝히는 일

그것만이 이 밤에도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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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차

혼자말/靑情 / 2013. 4. 5. 21:16




<국화차>


꽃이 묻는다

옅게 다시 피어나는

나의 두 번째 탄생이

보기 좋으냐고


나는 답한다

약간 수척하지만

향은 처음보다

오히려 더한 것 같다고


꽃을 입에 물고

차를 삼키면

내 입에서도 향기가 나올까

내 똥에서도 향기가 나올까


살아가는 동안

입으로 지은 죄가

하도 무거워

역겨운 냄새를 지고 살더니

꽃은 입에 부서져

죄 짓지 말고 살아라

타이른다,

혓등을 토닥거린다


꽃이 말한다

세 번째 태어나도

네 입에 다시 필테니

포기하지 말아라,

부디 향기를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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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잔이 되신 하나님>


밥 달라 아우성치는 

우리를 위해

기꺼이 밥이 되신 하나님

하늘에서 내린 밥을

먹고도 배고픈

사람들 위해

밥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

아서라, 천천히

급히 먹으면 체할라

잔이 되신 하나님

먹고 배부르고

마시고 목마르지 말아라

말씀을 주시고

내 안으로 길을 가셨다


하나님 먹고서

힘이 나거든

밥값 품고 살아라

밥값 하고 살아라


뱃속에서 우러나는 토라에

심장을 어루만진다

뭐하러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말구유 보다 누추한

내 안으로 왜


하나님 마시고

힘이 나거든

하나님처럼 살아라

하나님스레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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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 아래서

혼자말/靑情 / 2013. 3. 30. 20:39




<벚나무 아래서>


흐드러진 꽃잎에 걸려

길 옆에 섰더니

팔랑거리는 꽃바람은

누이의 입술 같아

무슨 사연이 저리도 많아서

숨 쉴 틈도 모를까


나무는 꽃을 토하고

꽃은 추억을 뿌리고

같이 걸었던 내 사람은 이제

천 리 밖,

잎이 나오면 꽃이 지듯

우린 살고 있구나


봄날은 흐른다

꽃은 날린다

사랑은 사무치게 그리워

가슴에 자국 남기니

이 길에 서성이다 돌아서면

다시 그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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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혼자말/靑情 / 2013. 3. 24. 02:51



<친구야>



부디 건강하거라, 친구야

내 곁에 없어도

함께 달리던 언덕의 푸름을

네 가슴에 깊이 비노니

나이를 먹더라도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나는 사람이 되거라


너는 꽃보다 향기롭다

너는 바람처럼 자유롭다

네가 지저귀는 음성에

나는 꿈결처럼 행복했다

허튼 하품에조차

나는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트렸다

친구라는 이름만으로

외롭지가 않았다


그래, 어떤 사람은

같은 하늘 아래 산다는 것만으로도

한없는 위로가 되기도 하지

나는 너 때문에 배웠다

나는 너 때문에 그립다


부디 행복하거라,

내 오랜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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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혼자말/靑情 / 2013. 3. 22. 12:44



<하늘>


하늘은 때로

점도 없고 흠도 없다

너무 깊고 맑아

담아낼 색이 없도록

눈이 부시다


하늘은 때로

시커먼 먹구름으로

빈틈이 없다

회색빛 구름을 토하고

되먹는 꿈틀거림에

두려움마저 인다


하늘은 언제나

맑다

그 어딘가를 떠도는 구름은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을 다 채울 

구름은 있지 아니하고

구름마저 어루만져

평온하게 땅으로 보낸다


하늘은 언제나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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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소풍

혼자말/靑情 / 2013. 3. 19. 02:38





<봄소풍>


오랜만에 따뜻한 바람이 

들판을 어루만지던 날에

동무의 등을 따라서

꽃들이 피어나는 길을 따라서

행복은 간다

햇살은 흐른다


땅은 초록색 피를 가졌구나

하늘은 어디에

그토록 파아란 물감을 

숨겨놓고 있었을까

하루에도 거듭하여

덧칠하는 그 짙어짐에 질려

사람은 웃는다

아이들은 달린다


언젠가는 지금이

그리울 것을 알기에

잠시 힘들었어도

너무 한탄하지는 말기로 하자

먼지 피우는 길을 걸으며

지나가는 것일 뿐이니

이 길 끝에서 만날 생명은

또 얼마나 경이로울까


저기 보이는 언덕에서

봄이 뒤척인다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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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혼자말/靑情 / 2013. 3. 17. 21:01



<뿌리>


푸름 하나 없이

모양 하나 없이

땅 위를 뒹굴어 몸으로 기어도

그 벗겨진 껍질에

속살이 아프게 울어도

돌이 박혀도

흙을 씹어도

부끄러울 필요는 없다


네가 아파서

푸름이 짙어가고

네가 울어서

장엄한 그늘이 늘어가느니

생명은 무릇

그렇게 피어난 것

아프지 않고 

영그는 목숨이 어디 있으랴

울어보지 않고

철드는 목숨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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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혼자말/靑情 / 2013. 3. 16. 23:30



<들꽃>


너에게 말을 건다

차분하게

한참을 앉아 마주하고

이미 빼앗긴 눈길 위에다

손을 내밀어도

차마, 

꺾을 수 없는 망설임으로

심장처럼 나는 떨린다


아직도 시린 밤을

여린 네가 어찌 견딜까

아무도 몰라주는 이 벌판에

어찌 너는 그리 고우냐


떠나는 걸음에 

실어준 향기를 먹고

나도 또 살아보마

봄은 따뜻하고

너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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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말/靑情 / 2013. 3. 12. 22:36



< 잠 >


죽은 듯이 누워
숨을 쉰다
배가 출렁거린다
가슴이 울렁거린다

저 너머에선 내가
어찌 살고 있을까
삶은 
여기와 저기를
넘나들며 이어가는 것
하나를 끊어내면
다른 하나가 이어진다

어렴풋이 무언가
떠오르려 하다가도
느낌만 남기고
바람결에 흘러간다

이제 기억이 껍질을 
깨뜨리려 하는가보다

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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